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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짝이 무대복을 입고 춤추는 꽃할배-. 원혜영(66)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선거 때 ‘꽃할배 유세단’을 만들어 전국을 유랑했다.

“이미지가 좋고 대중성이 있는 지식인·문화인들의 지지 선언을 받으려 했는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‘한번 발표하고 마는 것보다 직접 유세를 다니는 게 좋겠다’고 해서 만들었어요.”

이철 전 의원,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, 유시춘 작가 등이 참여하고 망가지는 콘셉트로 의상을 준비했다.

“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같은 유명 인사가 격의 없이 하니까 재미있어 했어요. 가끔 참여해 준 사물놀이의 김덕수 교수, 만화가 박재동 교수도 아주 인기가 있었어요.”

그의 의원회관을 찾은 지난 6일 다음 날로 예정된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준비로 분주했다. 그 틈에 선거 이야기부터 물어봤다. 그는 5선 국회의원(부천 오정)으로 원내대표와 당 대표까지 맡은 중진이다. 최근 당내 중진자문위원회의 의장도 맡았다.

“5년 전 대통령선거와 달라졌어요. 그때는 캠프 중심 선거여서 당 조직이 전혀 가동이 안 됐습니다. 의원들조차 ‘내 선거’가 아니었어요. 심지어 단상에도 못 올라가 상처로 남았죠. 이번에는 당 중심 선거였습니다. 의원과 지역위원장들이 자기 선거처럼 했습니다. 집권 이후에도 당(黨)과 정(政)이 따로 놀고, 심지어 갈등까지 있었던 걸 반성하고, 이 정부가 성공하도록 중진부터 솔선수범하자는 것이죠.”

 

Q : 새 정부가 기대만큼 잘하고 있습니까.

A : “예상보다 잘하고 있어 다행이에요. 문재인 후보가 자기는 재수(再修)에 강하다고 했는데…. 어떻게 보면 재수를 안 했으면 이렇게 잘 준비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서, 국민과 잘 호흡하면서, 우선순위를 잘 가리고 속도에 맞춰 하지 못했겠죠.”


Q : 취임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오면서 지지율이 86%가 나왔습니다. 그런데 지난주에는 조금 떨어졌어요.

A : “당연히 조정기를 거치겠죠. 흔한 말로 이제 떨어질 일밖에 더 남았겠어요. (여유 있게 웃으면서) 70%도 얼마나 가겠어요? 한 50~60%만 해도… 국민 과반의 지지를 받고, 또 받도록 노력하면서 임기까지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희망사항이죠.”


 


Q : 지금 박수를 많이 받지만 여소야대라 굉장히 불안하지 않습니까.

A : “어쨌든 지금은 야 4당 중에 3당과 합의를 하면 풀어 나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. 협치(協治)의 모델을 찾아 나가야죠. 대통령도 나서시겠다고 하시고… 어렵지만 잘할 수 있지 않을까, 그런 생각이 들어요.”


 


Q : 지지자들은 적폐 청산을 요구하지만 과거 문제와 미래 문제의 조화도 생각해야 할 텐데.

A : “그렇죠. 참여정부 때를 좀 반성적으로 평가하는 게 너무 그런 정치적인 이슈, 가치의 재정립, 이런 데 매달렸어요. 역시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민생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게 중심이고, 그 일을 해 나가면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았을 때 국민적 이해도와 지지도가 높은 것 아니냐. 나도 공감을 해요.”


 


Q : 청문회는 잘될까요.

A : “관행으로 여겨졌지만 분명히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국민 정서상으로도 공직에 나서기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 게 많이 있거든요. ‘옛날 관행이니 다 덮고 넘어가자’. 이건 안 될 거란 말이죠.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정부가 앞장서고 여야도 같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인사의 원칙을 정립했으면 좋겠어요.”


 


Q : 신상 털기가 부담스러워 공직을 안 맡겠다는 사람도 있어요.

A : “그래서 제가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냈어요. 센세이셔널리즘을 조장하고 제대로 검증은 못하기 십상입니다. 그래서 정부에 인사 검증 전문기구를 만들어 검찰이나 국세청에서 자료도 받아 철저하게 거르고, 거기서 통과된 사람만 청문 대상으로 하자는 겁니다.”


 


Q : 개헌은 문 대통령 공약대로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을까요.

A : “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들을 초청해 개헌 얘기를 능동적으로 제기하지 않았습니까? 그래서 외적인 불확실성과 장애요인은 완전히 해결됐다고 봐요. 문 대통령이 아주 교묘한 구상을 밝혔어요. 공개적으로 ‘개헌을 하자’고 분명히 하고 국회에 공을 넘겼단 말이죠. ‘개헌안을 못 만들면 국회 책임이고, 주로 야당 책임이다. 청와대나 여당은 반대하지 않겠다’. 이렇게 확실하게 쐐기를 박았거든요. 정말 잘한 게 나나 정치 개혁을 주장하는 분들은 ‘개헌만 해서는 안 된다. 선거제도 개혁을 수반하지 않는 개헌은 한계가 있다’고 생각해요.”


그는 현재 소선거구제는 표의 등가성(等價性)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승자독식구도라고 지적했다.

“제1수혜자는 다수당·집권당이고 제2수혜자는 제1야당이에요. 이번 대선도 그랬지만 총선 때도 제일 센 놈이 크게 먹고 야당 중에 센 놈이 ‘집권세력 독주를 견제하려면 제1야당을 키워 줘야 한다’고 해서 먹습니다. 40% 안팎으로 당선되지만 나머지 60%에 담긴 민의는 비례로 나눠 줘 등가성을 보장해야 합니다.”


Q :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그런 ‘연동형 비례대표제’를 제안했죠.

A : “그게 개헌보다 더 쉽지 않은 거야…. 지금 의석 300석 안에서 조정하면 (지역구가 크게 줄어들어) 지역구 의원들은 완전히 박살 나는 거야. 선관위가 정말 용기 있게 진취적인 안을 냈는데, 그 안을 주도한 사무총장은 불이익을 받았어요.”


 


Q : 고고도미사일방어(THAAD·사드) 체계 배치를 전임 정부가 한 일로 미루는 게 부담을 더는 방법 아니었나요? 중국의 보복기간만 연장할 것 같은데.

A : “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고려해 최종 배치가 확정되기까지 지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 정부의 고심이나 노력을 보여 줄 수 있는데…. 계속 살아 있는 현안으로 부각되는 측면도 있고…. 부담이겠죠. 시간을 끌면서 상황 변화를 만들어 보려고 하는 노력이 있겠지만…. 참… 쉽지 않겠죠.”


그는 곤혹스러운 듯 말이 빙빙 돌았다.

“근본적 해법이지만 그전에 비하면 여건이 많이 조성된 게 도널드 트럼프가 김정은하고 햄버거를 먹든 어떻게 하든 대화를 하겠다는 것 아니에요? 어떻게 북핵 문제 해결의 결정적 계기를 만드느냐. 그런 것들이 조성됐을 때 사드 문제는 좀 더 탄력을 받고….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질 수 있지 않겠느냐. 시간을 벌면서 그런 기회를 만들려고 합니다.”


Q : 북핵을 해결해 가면 이건 저절로 해결된다는 생각이네요.

A : “네.”


 


Q : 일본에 특사단으로 다녀오셨는데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합니까.

A : “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게 정부가 공식적 자금을 내놓는다는 것이 더 진정된 사과 또는 보상의 의미가 있다고 박근혜 정부가 생각한 것 아닌가요. 이미 김영삼 정부 때 ‘우린 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다. 돈은 안 받겠다’고 선언했거든요. 그걸 깨고 10억 엔을 받은 건 불씨를 만든 거란 말이죠. 해법이 아니라 더 족쇄가 돼서… 이건 좀 털어 낼 필요가 있어요. 창조적인 해법을 찾아야죠.”


 


Q :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던데….

A : “얘기하기 참 그런데… 정세균 의장이 문희상 의원하고 경쟁해 더블스코어로 이겼어요. 핵심 논리가 국회의장단은 국회를 대표하는 상징인데 부의장을 한 사람이 왜 또 의장을 하려고 하느냐? 이게 먹힌 거예요. 지난번에 선후배가 경쟁하는 모습이 좋지 않게 보일 것 같아 양보했는데 아직도 그 문제가 안 풀리고 있으니 고민을 해 봐야죠.”

 

 

 

원혜영 의원과 그의 부친 원경선씨(사진 왼쪽)가 활짝 웃고 있다. 풀무원농장 툇마루에 앉아 있다. 원 의원 집무실에 들어서면 대형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.

원경선 풀무원농장 원장은 2013년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. 그는 늘 “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”고 말했다. 그 영향으로 원 의원도 “무엇이 유리한가보다 어떤 게 바른길인가를 생각한다”고 했다.

평안도 빈농이었던 원 원장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대 상경했다. 우유 배달 등 여러 일을 했다. 베이징(北京)에서 인쇄소도 했다. 해방 후에는 부천에서 농사를 지었다. 원 의원이 태어나 사는 바로 그 집이다.

그는 평신도교회(퀘이커) 지도자였다. 어려운 사람들을 불러 모아 공동체 생활을 했다. 원 의원은 다섯 누이 틈에 자랐다. 가족들도 공동체 사람들과 같이 자고, 같이 먹고, 같이 일했다. 어린 원 의원은 이런 생활에 불만도 많았다.

원 원장은 지적 호기심이 매우 많고, 굉장한 실천가였다. 이야기를 듣자 바로 한국 최초로 ‘유기농업’을 시작했다. 풀무원농장이다.

80년대 초 감옥에서 나온 원 의원은 부친의 유기농산물을 파는 풀무원을 창업했다. 96년 당시 21억원 상당의 풀무원 지분을 모두 장학재단에 기부하고 친구에게 경영권을 넘겼다.

87년 제정구·유인태 등과 한겨레민주당을 만들었다. 김영삼·김대중 분열을 보고 새 정치를 꿈꿨다.

“이해찬이 ‘정치의 현실’이라고 하더라고요. 노무현은 통일민주당, 이해찬은 평화민주당으로 갔는데…. 나는 정치도 민주화운동의 한 실천이라고 생각했어요.”

92년 14대 의원에 당선됐지만 96년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자 참여를 거부하고 노무현 등과 통추 활동을 했다. 98년부터 부천시장을 두 번 한 뒤 다시 국회로 무대를 옮겼다.

 

인터뷰 원문 바로가기: http://news.joins.com/article/21653038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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